족보
  • 이맹휴(李孟休)
  • 여주이씨(驪州李氏),  출생~사망 : 1713 ~ 175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순수(醇○). 실학자 익(瀷)의 아들로, 광주(廣州)에서 살았다. 1742년(영조 18) 영조가 춘당대(春塘臺)에서 양역(良役), 학교, 군제, 용인(用人), 전화(錢貨) 등 5조의 책문(策問)으로 정시(庭試)를 실시하였을 때 당시 진사로서 수석으로 합격하자, 영조의 특명으로 한성부주부에 제수되었다. 1743년 그가 적신(賊臣) 이잠(李潛)의 조카라 하여 사간원의 탄핵이 있었으나 영조가 허락하지 않았다. 1744년에는 예조정랑으로서 예조판서 이종성(李宗城)의 천거로 착란(錯亂)이 심한 예조의 등록(謄錄)을 분류, 정리하여 인출(印出)하는 일을 전담하게 되었는데, 이 책이 곧 예조에서 소장한 '춘관지 春官志'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