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수이(秀而). 호는 아은(啞隱). 형조참의 후천(後天)의 아들이다. 생원시에 합격하여 효종초에 세마(洗馬)를 지내고, 뒤에 서산군수로서 선정을 베풀었으므로 파주목사로 특별히 승진되었고,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을 지냈다. 1663년(현종 4) 직산현감 때 탄핵을 받아 한때 안흥진(安興鎭) 소속의 수군에 보충되었다. 1667년에 죄가 풀려 금화현감이 되었다. 1671년 전국에 걸쳐 큰 가뭄과 기근이 있어 진휼청(賑恤廳)을 설치할 때 낭관으로 기민구휼에 활약하여 왕으로부터 말을 하사받았다. 이듬해 연안부사가 되어서는 고을의 음사(淫祠)를 없애고 무당들을 내쫓고, 이속들이 백성들을 착취하는 부정행위를 엄히 다스려 치적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