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수이(修爾). 명욱(明○)의 아들로, 명정(明鼎)에게 입양되었다. 1775년(영조 51)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다음해 지평으로 재직하였다. 이듬해 7월 헌납 심풍지(沈豊之)의 상소로 1775년의 문과가 파방(罷榜)되어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1792년(정조 16) 12월 지평으로 복직되었다. 이후 양구현감, 홍문관교리, 사간, 첨지중추원사 등을 역임한 뒤, 1799년 6월 곡산부사로 나갔다. 1801년(순조 1) 승정원승지로 임명된 뒤 대사간, 예조참판, 공충도관찰사, 함경감사, 호군(護軍), 공조판서, 대사헌, 형조판서, 좌참찬 등을 역임하고, 1815년 2월 병조판서에 이르렀다. 그러나 같은해 7월 홍문관교리 이진연(李晉淵)의 인사행정상의 문제점을 지적한 상소로 대사헌으로 체직(遞職)되었다. 이후 한성부판윤, 분내국제조(分內局提調), 병조판서, 우참찬 등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