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98년(정조 22) 진김후(金𨩿사가 되고, 180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등용된 뒤 전적을 거쳐, 1803년 지평으로 있을 때 영의정 이병모(李丙模)를 몰염치한 자라 비난하였고 이에 홍문관수찬 이동환(李東煥)도 동조하자, 당시 수렴청정을 하고 있던 정순왕후(貞純王后)에 의하여 남해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이병모가 그를 석방시킬 것을 청하였으므로 1805년 방환되었다.
1809년 부수찬 겸 금위영종사로 복직되었으나, 1811년 당시의 비정을 직간했다가 군위현(軍威縣)에 유배되었으며, 그뒤 관직이 대사간 에까지 이르렀다. 천품이 영특하고 기개가 있었으며 문장에 능하였다. 정사에 임하여서는 정성을 다하였다. 안동 사람들은 새로 수령을 맞이할 때는 김후 같은 인물을 얻기를 바랐다고 한다.
1798년(정조 22) 진김후(金𨩿사가 되고, 1800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에 등용된 뒤 전적을 거쳐, 1803년 지평으로 있을 때 영의정 이병모(李丙模)를 몰염치한 자라 비난하였고 이에 홍문관수찬 이동환(李東煥)도 동조하자, 당시 수렴청정을 하고 있던 정순왕후(貞純王后)에 의하여 남해로 유배되었다. 그러나 이병모가 그를 석방시킬 것을 청하였으므로 1805년 방환되었다.
1809년 부수찬 겸 금위영종사로 복직되었으나, 1811년 당시의 비정을 직간했다가 군위현(軍威縣)에 유배되었으며, 그뒤 관직이 대사간 에까지 이르렀다. 천품이 영특하고 기개가 있었으며 문장에 능하였다. 정사에 임하여서는 정성을 다하였다. 안동 사람들은 새로 수령을 맞이할 때는 김후 같은 인물을 얻기를 바랐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