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성서(聖瑞). 호는 동화(東華). 조부는 이사한(李思閑)이며, 아버지는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이관채(李寬采)이다.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 별제(別提) 홍희구(洪希求)의 딸이다. 동생은 이해광(李海廣)이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는데, 아들은 증병조참판(贈兵曹參判) 이원기(李元耆), 동생인 이해광에게 계출한 돈령도정(敦寧都正) 이선기(李先耆), 부장부사과(部將副司果) 이완기(李完耆)가 있다. 사위는 이면성(李勉誠)과 서전보(徐田輔)이다. 1825년(순조 25) 51세에 을유식년사마시(乙酉式年司馬試)에 생원 3등으로 합격하였고, 그해 5월 6일에 죽었다. 그는 조인영(趙寅永), 조만영(趙萬永), 한치윤(韓致奫), 이지연(李止淵), 이회연(李晦淵), 서장보(徐長輔), 조수삼(趙秀三) 등과 교유하였다. 1803년(순조 3)에 친우인 서장관(書狀官) 서장보를 따라 청의 연경(燕京)에 다녀와서이 연행의 기록을 '계산기정(○山紀程)'으로 정리하였다. 그는이 책에서 세밀한 관찰력을 바탕으로 산문과 시를 적절히 배합하여 명승고적과 중국의 민속연희, 공연예술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는 이밖에 '동화유고(東華遺稿)' 3권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