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성공(聖功). 호는 기수(畸○). 원주 출신. 첨지중추부사 시한(時翰)의 손자이며, 정자 도겸(道謙)의 아들이다. 일찍이 할아버지로부터 학문을 익혀 1687년(숙종 13) 사마양시에 모두 합격, 생원, 진사가 된 뒤, 1691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부정자, 승정원주서, 성균관전적, 병조정랑 등을 거쳐 1693년 수찬이 되고, 이어 정언, 지평을 역임하였다. 이듬해 갑술옥사가 일어나자 수찬으로서 상소, 귀양간 권대운(權大運), 목내선(睦來善) 등 남인의 노대신들을 구하려다가 도리어 왕의 노여움을 사 삭탈관작당하였다. 1707년 다시 등용되어 안성군수, 선산부사, 공조참의, 호조참의 등을 거쳐, 1722년 풍덕부사로 있을 때 임지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