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성가(聖可). 아버지는 홍문관교리 희세(熙世)이며, 어머니는 현감 박안승(朴安昇)의 딸이다. 1675년(숙종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682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에 분관되었다가 검열을 거쳐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 때 남인이 집권하게 되자, 서인인 조태구(趙泰耉), 이징명(李徵明), 조형기(趙亨期) 등과 함께 남해에 유배되었다가, 1694년 갑술옥사로 남인이 실각되자 풀려나왔다. 그뒤 부수찬, 정언, 이조좌랑, 부교리, 헌납, 지제교, 사인, 부응교, 보덕, 집의 등을 거쳐 1696년 승지, 병조참지, 예조참의 등을 역임하고, 1697년 전라도관찰사로 재임하다가 죽었다. 그는 문장과 필법이 뛰어났고, 고사(古史)에도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