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석여(錫汝). 세종의 서자 영해군(寧海君) 당(塘)의 7대손으로, 양휴(揚休)의 아들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를 거쳐 1630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승문원정자, 예문관검열 등을 거쳐 승정원주서로 옮겼다. 뒤이어 병조, 예조의 좌랑과 시강원사서를 역임하여 삼사의 요직 등을 맡았다. 1647년 의정부사인으로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병조참지, 우부승지를 거쳐 1650년(효종 1) 전라도관찰사가 되었으나, 김자점(金自點)의 일당이라 하여 파직되었다. 1660년(현종 1) 상주목사로 복직되었다가 또 다시 김자점 문제로 파직되었다. 그뒤 철원부사를 지내다가 수어사(守禦使) 김좌명(金佐明) 과의 불화로 사직하였는데, 김좌명의 청죄(請罪)로 1668년에 충군(充軍)되었다가 풀려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