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서구(敍九). 호는 봉곡(鳳谷). 시열(時烈)의 손자이며, 기태(基泰)의 아들이다. 1683년(숙종 9)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수찬을 역임하는 등 청요직에 출입하여 벼슬이 교리에 이르렀다. 시열이 죽기 5년 전에 문과에 급제하였는데, 그해에 시열이 박세채(朴世采), 이단하(李端夏) 등과 문답한 시사(時事)를 정리하여 '향동문답 香洞問答'을 완성하였고, 시열의 유소(遺疏)를 직접 받았으며, 그뒤 당쟁과 관련된 가정사를 '구화사실 構禍事實'이라는 책명으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