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사홍(士弘). 증조부는 김만기(金萬基)이고, 조부는 병조판서(兵曹判書) 광은부원군(光恩府院君) 김진구(金鎭龜) 로, 1680년(숙종 6) 경신별시문과(庚申別試文科)에 병과 8등으로 합격하였다. 아버지는 부제학(副提學)과 형조참판(刑曹參判) 등을 역임한 김운택(金雲澤) 으로, 1704년(숙종 30) 갑신춘당대문과(甲申春塘臺文科)에 병과 3등으로 합격하였고, 1722년 신임옥사 때 목호룡(睦虎龍)의 무고로 장살(杖殺)되었다. 김위재(金偉材)는 음직으로 부수(副率)를 역임하였다. 영조가 즉위하자 옥사 때 피해를 당한 자들에 대한 신원이 있었는데, 그 자손들이 대부분 음사를 받아 한양으로 나왔으나, 김위재는 일생동안 한강을 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