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사징(士澄). 호는 덕암(德巖). 영변 출신. 증판서 세린(世麟)의 아들이다. 1788년(정조 12) 영변참봉으로 있을 때 서북인의 등용을 주장하는 좌의정 이성원(李性源)에 의하여 학행과 효행으로 천거되어 숭령전랑(崇靈殿郞)에 제수되었다. 곧 이어 강릉참봉을 거쳐, 1791년 가선대부가 되었다. 1794년 80세의 나이로 특별히 지중추부사에 임용되었으며, 이 당시의 노고를 인정받아 1798년 12월 도총관에 올랐다. 그뒤 관직이 한성부판윤에 이르렀다. 저서로는 '덕암집'이 있다. 시호는 돈희(敦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