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윤묵(朴允墨)
  • 밀양박씨(密陽朴氏),  출생~사망 : 1771 ~ 1849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사집(士執). 호는 존재(存齋). 부친은 박홍재(朴弘梓)이며, 어산(漁山) 정이조(丁彛祚)의 문인이다. 일찍이 20세에 내각(內閣)에서 벼슬을 할 때에 시문(詩文)에도 뛰어나고 성품도 근신(謹愼)함으로 정조의 총애를 받았으며 영의정(領議政) 김매순(金邁淳)도 그의 근신함을 칭찬했다.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으며, 1819년(순조 19) 곡산부사(谷山府使)로 나아가 어제비문(御製碑文)을 마대(馬臺)에 세웠고 1835년(헌종 1)에 평신진첨절제사(平薪鎭僉節制使)로서 선정(善政)을 베풀어 송덕비(頌德碑)가 세워졌다고 한다. 서예(書藝)에도 조예(造詣)가 깊었는데, 왕희지, 조맹부의 서체를 이어받았고, 시문(詩文)에 뛰어났다. 또한 조선 후기의 여항시사(閭巷詩社)인 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가 해체된 뒤 서원시사(西園詩社)를 결성하여 지석관(池錫觀), 김희령(金羲齡), 박기열(朴其悅), 홍덕조(洪德祚) 등과 활동하였다. 1843년에는 일섭원(日涉園)에서 시연을 열고 그 정경을 그린 것이 있는데 이로 미루어 서원시사가 헌종 때 활발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저서로 '존재집(存齋集)'이 있는데, 아들인 박기조(朴基祚)와 박기복(朴基福)이 등사(謄寫)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고, 1880년(고종 17)에 증직(贈職)한 교지(敎旨)도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