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홍중해(洪重楷)
  • 풍산홍씨(豊山洪氏),  출생~사망 : 1658 ~ 1704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사식(士式). 아버지는 홍문관교리 만형(萬衡)이며, 어머니는 관찰사 민광훈(閔光勳)의 딸이다. 처음에는 송준길(宋浚吉)을 섬겼으나, 뒤에 송시열(宋時烈)과 박세채(朴世采)를 사사하였다. 진사시에 합격하여 세마가 되고, 내섬시주부를 거쳐, 공조좌랑을 지냈다. 그뒤 돈령부판관, 공조정랑을 역임하고, 김천현감(金川縣監)으로 나갔다. 김천현이 군으로 승격하는 바람에 그곳에서 김천군수가 되고, 이어 충주목사에 이르렀다. 1701년(숙종 27) 김천군수로 있을 때 인현왕후(仁顯王后)의 상을 당하였는데 왕후의 외종형으로 소렴(小斂), 대렴(大斂)에 입참하였다. 타고난 성격이 순후하고 인자하여 백성을 사랑하기를 자식같이 하였고, 부정과 부패 다스리기를 추상같이 하여 김천 군민이 믿고 따라 치적이 높았다. 어사 유명홍(兪命弘)과 관찰사 신임상(申○相)이 서로 그 공적을 조정에 보고하였다. 충주목사로 나가게 된 것은 충주에 세금을 거두는 것이 많았으나 교활한 아전들이 반 이상을 침식하여 창고가 비었으므로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조처에서였다. 충주에 부임하여 창고를 조사하여 모실(耗失)이 심한 자를 효수(梟首)하고 다른 창고를 조사하던 중 독살당하였다. 그뒤 범인은 잡혀서 죽음을 당하였으나 온 고을 백성들이 명관의 죽음을 슬퍼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