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시항(李時恒)
  • 수안이씨(遂安李氏),  출생~사망 : 1672 ~ 1736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사상(士常). 호는 화은(和隱). 증조부는 이계달(李啓達), 조부는 증공조좌랑(贈工曹佐郞) 이동의(李東義)이고, 아버지는 증사헌부지평(贈司憲府持平) 이정한(李廷翰)이다. 어머니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원주변씨(原州邊氏) 변진현(邊晉賢)의 딸이다. 1696년(숙종 22) 병자식년사마시(丙子式年司馬試)에 진사 2등으로 합격하였으며, 1699년(숙종 25) 기묘증광문과(己卯增廣文科)에 병과 23등으로 급제하였다. 처음 성균관(成均館)에 예속되었다가 전적(典籍), 직강(直講),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 예조(禮曹)와 병조(兵曹)의 좌랑(佐郞), 정랑(正郞)을 역임하고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 편수관(編修官)을 겸임하였다. 외직으로 나가서는 태천현감(泰川縣監), 어천찰방(魚川察訪), 덕천군수(德川郡守)를 역임하고 그 사이에 경상도(慶尙道) 황장목경차관(黃腸木敬差官)으로 파견되기도 하였다. 또 진주사(陳奏使) 별종사관(別從事官)으로 북경에 가기도 하였다. 유구(悠久) 유상운(柳尙運)을 스승으로 모셨는데, 문장에 능하였으며 특히 변려체(○儷體)가 뛰어났다. 또한 변경에 관심을 가져 직접 말을 타고 돌아보며 기록해 둔 지역의 산천과 인물, 전부(田賦), 군량(軍糧), 방어의 형편, 기무의 득실들을 모아 '관서통지(關西通志)'를 저술하였다. 1736년(영조 12년) 평양(平壤) 화포(和浦) 별장에서 세상을 떠나 운산(雲山) 선영의 을좌(乙坐) 언덕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