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박기수(朴岐壽)
  • 반남박씨(潘南朴氏),  출생~사망 : 1792 ~ 1847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봉래(鳳來). 형조판서 준원(準源)의 손자로, 이조판서 종경(宗慶)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덕수이씨(德水李氏)로 군수 술모(述模)의 딸이다. 큰아버지인 호조판서 종보(宗輔)에게 입양되었으며, 종조부인 윤원(胤源)의 문인이다. 1810년(순조 10) 생원, 진사 두 시험에 합격하고 1817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시강원설서(侍講院說書)가 되었다. 그뒤 홍문관부교리, 이조참의, 대사성, 경상도관찰사, 이조참판 등을 거쳐, 1835년(헌종 1) 공조판서에 승진하였다. 이어 예조, 형조, 이조, 병조 등 5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지경연(知經筵), 도총관, 함경도관찰사, 한성부판윤, 판의금부사(判義禁府事), 좌참찬 등을 두루 거쳐,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에 오르고, 벼슬이 판돈령부사에 이르렀다. 1830년 익종(翼宗)의 빈궁(殯宮)에 불이 났을 때 단신으로 불속에 뛰어들어 진화하였으므로 모두 그 충성심을 칭찬하였다. 그뒤 판의금부사로 있을 때 간신 김필(金弼)의 배소를 가까운 곳에 정할 것을 건의하였다가 파직되었다. 관직에서 물러난 뒤 양주의 돈암구사(敦巖舊舍)에 돌아가 산수를 소요하면서 여생을 마치려고 하였으나 1847년 병조판서에 재기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