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성효기(成孝基)
  • 창녕성씨(昌寧成氏),  출생~사망 : 1701 ~ ?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백원(百源). 1701년(숙종 27)에 성몽규(成夢奎)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부제학(副提學)을 지낸 성이문(成以文)의 서손(庶孫)이다. 그의 동생은 성학기(成學基)로 1740년(영조 16) 경신증광사마시(庚申增廣司馬試)에 생원 3등, 진사 2등으로 합격하였다. 성효기는 자질이 총명하였으며 매우 박학다식하였다. 그는 1733년(영조 9) 계축식년사마시(癸丑式年司馬試)에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다. 그는 찰방(察訪)을 역임하였다. 만년에 '사례집설(四禮集說)'을 지었다. 아들 청성(靑城) 성대중(成大中)은 1753년(영조 29) 계유식년사마시(癸酉式年司馬試)에 생원 2등으로 합격하였으며, 1756년(영조 32) 병자정시문과(丙子庭試文科)에 병과 2등으로 급제하였다. 성대중은 영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신분적인 한계로 벼슬이 부사(府使)에 그쳤다. 그의 손자인 연경재(硏經齋) 성해응(成海應)은 1783년(정조 7) 계묘식년사마시(癸卯式年司馬試)에 진사 2등으로 합격하였고, 성해운(成海運)은 1792년(정조 16) 임자식년사마시(壬子式年司馬試)에 진사 3등으로 합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