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백옥(伯玉). 호는 월곡(月谷). 두인(斗寅)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태주(泰周)이고, 어머니는 현종의 딸 명안공주(明安公主)이다. 이재(李縡)의 처질로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723년(경종 3) 사마시에 합격하고, 1728년(영조 4) 정시문과에 장원하여 문명(文名)이 높았다. 사서(司書)로 있을 때 영조에게 학문과 덕을 닦는 요령을 진언하여 가납되었고, 직언을 잘 하기로 이름이 났다. 1729년 정언으로 있으면서 탕평책을 적극 반대하다가 한때 삭직되었다. 1732년 동지사(冬至使)의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왔고, 이어 교리, 검토관, 이조좌랑, 응교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736년 참찬관(參贊官)으로 민형수(閔亨洙)를 신구(伸救)하려다가 또 파직되었으나 곧 다시 기용되어 1739년 부제학이 되고, 승지, 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일찍이 영조에게 당나라 육지(陸贄)가 주의(奏議)한 양세법(兩稅法)의 여섯가지 폐단을 진강하여 왕으로부터 크게 칭찬을 받았고, 또 성학(聖學)의 요무(要務)를 조목을 들어 밝히고 성덕(聖德)의 문제와 시정(時政)의 장부(臧否) 등을 입론하였다. 성품은 직량(直諒), 온후(溫厚)하였으며 총명절인(聰明絶人)하고, 문장 또한 청절(淸絶)하다 하여 진정한 유신(儒臣)이라는 평을 들었다.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월곡집'이 있다. 시호는 문목(文穆)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