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회보(李回寶)
  • 진보이씨(眞寶李氏),  출생~사망 : 1594 ~ 1669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문상(文祥). 호는 석병(石屛). 헌납 돈(燉)의 아들이다. 1629년(인조 7)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호조좌랑을 지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척화를 주장, 주전론을 펴다가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강화가 체결됨을 보고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였다. 그뒤 다시 관직에 나가 병조좌랑, 의정부사인, 공조좌랑을 역임하였는데, 이때 시폐를 논한 '기축봉사 己丑封事'를 올렸다. 1650년(효종 1) 장문의 상소를 올려 김자점(金自點)을 탄핵하여, 무군부도(無君不道)의 대역죄인으로 규정하고, 그의 횡포와 간계를 낱낱이 지적함과 아울러 사헌부 나 사간원 등 대간의 기능이 불엄(不嚴), 부실하여져 역신을 처벌하지 못하고 있음을 공격, 결국 김자점의 죄상이 드러나 사형당하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말직에 있으면서도 직간하는 위국충정이 뛰어나다 하여 1652년 사복시정에 특진되었고, 이때 응지소(應旨疏)를 올려 더욱 왕의 신임을 받았다. 그뒤 정평부사가 되어 효종의 북벌계획을 도와 군사력 증강에 노력하다가 1655년(효종 6)에 관직에서 물러났다. 저서로 '석병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