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명윤(明允). 호는 직암(直菴). 영의정 완(琓)의 손자이며, 박세채(朴世采)의 외손이다. 도학이 뛰어나 세자보도(世子輔導)로 천거되어 종부시주부(宗簿寺注簿), 장령, 집의, 시강원서연관(侍講院書筵官), 금성현령(金城縣令), 호조참의, 찬선 등을 역임하였다. 특히, 학문에 뛰어나 송인명(宋寅明), 김상로(金尙魯) 등이 천거하자 영조 또한 '당론의 주인'인 박세채를 생각하여 등용하였다. 1756년(영조 32) 호조참의로 있으면서 박세채의 문묘배향을 주장하다가 사림들의 탄핵으로 삭탈관직되고, 1763년에 시강원찬선에 특별히 제수되자 이를 고사하였다. 이에 영조는 '지금의 특별 제수는 박세채를 생각해서이니 속히 와서 세자를 보도하라.'고 할 만큼 그의 학행을 높이 여겼다. 이에 상소하여 박세채와는 조손(祖孫)겸 사생(師生)의 관계인데, 이를 밝혀 엄정히 하지 않는 것 또한 붕당의 폐해라고 주장하였다. 저서로는 '직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