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명익(李溟翼)
  • 진보이씨(眞寶李氏),  출생~사망 : 1617 ~ 1687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만리(萬里). 호는 반초당(反招堂). 지형(之馨)의 아들이다. 1649년(인조 27)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검열로 등용되고, 곧 설서가 되었다. 1657년과 이듬해 두 차례에 걸쳐 실록을 태백산, 오대산 사고에 각각 봉안하고 돌아왔다. 현종 때 정언이 되고, 이어서 지평을 거쳐 사간, 집의를 역임하였다. 1675년 승지, 다음해 대사간이 되어 언로(言路)의 기강을 세웠고, 1677년 외직인 충청도관찰사로 나가 세곡(稅穀)의 수송을 편리하게 하는 방법을 시행하게 하여 백성들의 부담을 덜게 하였다. 또한, 대동법을 시행하여 부역과 세공에 의한 백성들의 피해를 덜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