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득보(得甫). 호는 진정재(眞靜齋). 송애(宋崖) 김경여(金慶餘)의 증손으로 조부는 김방신(金邦藎)이고,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김중석(金重錫)이다. 7살에 어머니 함평이씨(咸平李氏)를 여의고 중부(仲父)인 도정공(都正公) 김창석(金昌錫)의 밑에서 자랐다. 1715년(숙종 41) 을미식년사마시(乙未式年司馬試)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였다. 평소 윤지술(尹志述)과 친분이 두터웠는데, 1721년(경종 1) 신임사화(辛壬士禍) 때 김일경(金一鏡) 등 소론(少論)의 탄핵으로 윤지술이 사형 당했다. 그 후 1725년(영조 1) 윤지술이 신원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는데, 이 때 모든 공직을 버리고 고향인 회덕(懷德)으로 돌아와 종형(從兄)인 합천공(陜川公) 김정운(金鼎運)과 동거하며 한 집에서 거처하였다. 고향에 머물며 김씨의 내력을 상세히 조사하여, 세대별 인물들의 이름과 자(字), 벼슬, 이력 등을 기록하였다. 그 전체 분량은 모두 331장(章)이 되었으며, '동애언락부(東崖諺樂府)' 라고 이름 하였다. 1767년(영조 43) 정해(丁亥) 9월 9일에 사망하여, 충남 연기군(燕岐郡) 동부곡(東釜谷)에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