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강윤(姜潤)
  • 진주강씨(晋州姜氏),  출생~사망 : 1701 ~ 1782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덕이(德以). 아버지는 이일(履一)이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병치료를 위하여 손가락을 잘라 그 피를 먹이기도 하였다. 9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봉양하였다. 1747년(영조 23)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 승문원의 별검이 되었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1758년 예조좌랑, 이듬해 지평, 장령 등에 제수되었으나 어머니의 노환을 이유로 모두 사퇴하였고, 당시 영남 지방에서 곡식매매에 관한 폐단이 심해지자 이에 대한 시정을 상소하였다. 1762년 은산현감과 세손시강원 필선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하였다. 뒤에 어머니의 상을 벗은 뒤에도 수찬, 교리, 집의, 강계부사 등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양하였다. 정조가 능력을 높이 사서 1779년 승지의 직함을 내리고 이듬해에는 홍충도(洪忠道: 충청도)관찰사에 임명하였지만, 나이가 많아 관직에 나아갈 수 없다고 사퇴하였다. 이에 정조는 허락하지 않았으나 영의정 김상철(金尙喆)의 건의에 따라 교체하고 말았다. 원래 과거를 보고 입사(入仕)할 때부터는 정의공도(正義公道)에 살고자 하였으며, 후에 자신의 성품이 관직에 맞지 않는다 하여 퇴계(退溪)를 흠모, 자신의 생활은 '퇴(退)'자의 의미를 지키는 것이라고 하며 모든 벼슬을 사양하고 은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