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한기(金漢耆)
  • 경주김씨(慶州金氏),  출생~사망 : 1728 ~ ?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덕수(德○). 아버지는 참의 선경(選慶),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貞純王后)의 아버지 오흥부원군(鰲興府院君) 한구(漢耉)의 동생, 어머니는 홍주화(洪胄華)의 딸이다. 1765년(영조 41) 9일제(九日製)에서 우수한 성적을 얻어 전시(殿試)에 바로 나갈 자격을 얻었고, 이듬해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형의 후광을 업고 그해에 바로 홍문관교리에 임명되었으며, 이듬해에는 당상관에 올라 승지, 성균관대사성,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770년 한구가 죽자 이를 매우 애석하게 생각한 영조의 배려로 특별히 호조참판에 임명되고, 이어 수어사, 어영대장에 발탁되는 등 왕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뒤에 벽파(僻派)의 영수인 조카 구주(龜柱)가 피화되자, 앞으로는 절대로 외척은 청화요직(淸華要職)에는 임명하지 말라고 영조에게 눈물로 호소하였고, 영조가 죽자 빈전도감제조(殯殿都監提調)를 지냈다. 정조가 즉위한 뒤 벽파로서 시파(時派)처벌에 관여하였다는 죄명으로 탄핵을 받고 문외출송(門外黜送)을 당하였다. 그러나 정조는 그의 무고함을 알고 또한 대비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유배만은 금하여주었다. 뒤에 다시 서용되었으나 현직에는 오르지 못하고 지중추부사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