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내초(來初). 호는 춘절재(春節齋). 영의정 원익(元翼)의 5대손이며, 대사간 존도(存道)의 아들이다. 1705년(숙종 31)에 진사가 된 뒤 문음으로 입사(入仕)하여 1708년 하양현감이 되었으며, 그뒤 경상도도사로 재직중 1714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1716년 홍문록(弘文錄), 도당록(都堂錄)에 차례로 뽑히고, 이듬해 비변사 로부터 어사가합인(御史可合人)으로 뽑혔으며, 그해에 부수찬이 되었다. 1718년 수찬이 되고, 1721년(경종 1)에는 승지에 올랐으며, 이어서 형조참의를 거쳐, 1724년에 동부승지, 사직이 되었다. 이때 경종이 죽자 왕대비의 복제(服制)를 둘러싸고 논란이 있었는데, 그는 3년 참최(斬衰)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1727년(영조 3) 공조참의에 이어서 예방승지를 거쳐 1729년 병조참판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