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난사(鸞斯). 필선(弼善) 윤동(胤東)의 손자로, 징(徵)의 아들이다. 1750년(영조 26) 진사가 되어 음직(蔭職)으로 도사(都事)를 지냈고, 1771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장령(掌令)이 되었다. 1787년(정조 11) 역시 장령으로 재직하면서 상소를 올려 그무렵의 학문이 심히 타락되고, 서원의 병폐가 극심한 것 등 9개조의 시폐(時弊)와 그 폐해를 구할 방법을 논하였다. 뒤에 벼슬이 승지에 이르렀다. 시문에 능하였는데, 특히 변려문(騈儷文)과 제술(製述)에 뛰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어, 영조가 문신들에게 시문을 짓게 할 때 여러번 1등에 뽑힌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