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기서(箕瑞). 호는 우암(寓菴). 경상북도 영해 출신. 아버지는 종사랑 상주(尙周)이다. 1687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693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그러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고향에서 10여년간 은거하다가 형 노명(老明)의 강력한 권유로 전적을 지내고, 1711년에 제주판관으로 부임, 흉년에 도민구제에 공을 세웠다. 뒤에 순천부사(順天府使)를 지내고, 다시 귀향하여 풍류를 즐기며 말년을 보냈다. 순천에 동비(銅碑)가 세워지고 제주의 죽림사(竹林祠)에 제향되었다. 저서에 '우암집'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