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근술(近述). 호는 입재(立齋), 남곡(南谷). 송시열(宋時烈)의 8대손이며, 흠학(欽學)의 아들로 흠락(欽樂)에게 입양되었다. 1848년(헌종 14)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대사헌, 공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좌찬성, 우의정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좌의정이 된 뒤 1882년(고종 19) 5월 정부의 조미수호통상조약체결교섭에 반대하여 사직소를 올렸다.이 상소에서 양교(洋敎), 즉 기독교의 폐해를 지적하고 일본 이외의 외국과의 조약체결을 반대하는 한편, 청국에 파견된 영선사(領選使)의 철환(撤還)도 주장하였다. 퇴직 후에는 봉조하(奉朝賀)가 되었으며, 저서로는 '송자대전수차 宋子大全隨箚'가 있다. 시호는 문헌(文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