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군실(君實). 호는 석릉(石陵). 아버지는 우의정 김이교(金履喬)이다.
1825년(순조 2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한때는 함경도위유어사(咸鏡道慰諭御使)로 뽑혀 수재(水災)로 고생하는 그곳 주민을 구제하고 위로하였다. 1830년에는 통정대부에 오르고, 1837년(헌종 3)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가 그 이듬해에는 이조참의로 옮겼다. 1839년에는 충청도감사가 되었으며, 5년 뒤에 이조참판이 되면서 순조롭게 승진하여 대사헌을 지낸 다음, 1847년 형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825년(순조 2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한때는 함경도위유어사(咸鏡道慰諭御使)로 뽑혀 수재(水災)로 고생하는 그곳 주민을 구제하고 위로하였다. 1830년에는 통정대부에 오르고, 1837년(헌종 3) 성균관대사성이 되었다가 그 이듬해에는 이조참의로 옮겼다. 1839년에는 충청도감사가 되었으며, 5년 뒤에 이조참판이 되면서 순조롭게 승진하여 대사헌을 지낸 다음, 1847년 형조판서를 거쳐 이조판서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