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기언(李箕彦)
  • 전주이씨(全州李氏),  출생~사망 : 1697 ~ 1743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군미(君美). 돈령부도정(敦寧府都正) 당(堂)의 아들이다. 1727년(영조 3) 사마시에 합격하고, 이듬해 순릉참봉(順陵參奉)이 되었다가 그해 겨울 사직하였다. 1737년 태릉봉사(泰陵奉事)를 거쳐 명릉봉사(明陵奉事), 정릉직장(靖陵直長) 등을 역임하였다. 1740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주서에 이어 시강원설서에 임명된 지 며칠 만에 사헌부장령에 특제되었으며, 그뒤 정언, 지평 등을 역임하면서 과거(科擧), 전정(田政), 군정(軍政), 적법(籍法)에 대한 구폐책(救弊策)을 올렸다. 1741년 겨울 시강원사서로 연행사(燕行使)가 되어 '공성사적도 孔聖事蹟圖'를 가지고 돌아왔고, 1742년 병조정랑이 되었다. 이때 영남지역에 양전사업(量田事業)이 있어 경상도사로 임명되었으나 사양하였고, 그뒤 양역사정(良役○正)문제로 공조정랑이 되어 비변사낭청의 실무를 관장하였다. 이어 무안현감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부임하지 못하고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