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공회(公晦). 아버지는 이조참의 경선(景善)이다. 1838년(헌종 4)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1840년 한림소시(翰林召試)에 선발됨으로써 출사하였다. 1842년에 평안도암행어사가 되어 숙천(肅川), 삼화(三和), 개천(价川), 순천(順川), 맹산(孟山) 등지의 탐관오리들을 숙청하여 민심을 안정시켰다. 그뒤 이조참의, 대사성, 이조참판을 역임하고, 고종 조에 들어와서는 형조, 예조, 공조의 판서를 차례로 역임, 정계의 중요인물로 부상하게 되었다. 또한, 1869년(고종 6)에는 동지 겸 사은정사(冬至兼謝恩正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그뒤 광주부유수(廣州府留守), 한성부판윤, 홍문관제학을 역임하였다. 시호는 문정(文靖)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