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정규(李鼎揆)
  • 여주이씨(驪州李氏),  출생~사망 : 1735 ~ ?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공택(公宅). 호는 양한당(養閒堂). 증조부는 이덕조(李德祚), 조부는 이실중(李實中), 아버지는 이헌일(李憲一)이다. 어머니는 풍천임씨(豊川任氏)로 예조정랑 임화세(任華世)의 딸이다. 1768년(영조 44) 무자식년문과(戊子式年文科)에 병과(丙科) 40등으로 급제하였다. 주서(注書)에 임명되어 입시(入侍)하자 영조가 비망기(備忘記)를 읽게 하고 '명사강목(明史綱目)', 표피(豹皮) 등을 하사하였다. 교리(校理), 수찬(修撰), 승지(承旨), 장령(掌令),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 등을 역임하고, 도령(都令)이 된 것이 무려 41번이었으며, 사헌부대사헌(司憲府大司憲)에 이르렀다. 항상 직위가 바뀔 때마다 곧 낙향하니, 임금이 조회에서 '이 사람은 고향으로 잘 내려간다.'고 하였다. 늙어서 벼슬에서 물러나니 임금이 경상도관찰사(慶尙道觀察使)에게 명하여 세시(歲時) 때마다 음식을 내려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