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공진(公鎭). 아버지는 감찰 두화(斗華)이다. 1660년(현종 1)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뒤에 대흥군수를 지냈다. 1663년 이이(李珥)와 성혼(成渾)의 학문과 도덕이 조잡하고 공명하지 못하다고 평하고, 문묘에 종사하자는 청에 반대하는 소를 올려 물의를 일으킨 바 있어 1년간 과거응시를 정지당하였다. 1681년(숙종 7) 감시(監試)의 시권(試券) 가운데 익명의 상변서(上變書)에서 김환(金煥), 남중유 등이 비밀결사를 만들어 김포 근처 해도(海島)에서 반역을 꾀하는 모임을 가진다는 참소를 당하였으나, 상변서는 왕이 불태우고 문제화하지 않았다. 관직에 있을 때는 자신의 이해를 떠나서 권세가들을 억제하고 어려운 자를 구하였고, 상사에도 굴종하지 않아 파직되었다. 저서로는 '위혜병 威惠幷'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