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공보(公甫), 공보(公輔). 증조부는 오기석(吳祺錫), 조부는 오대경(吳大經)이고, 아버지는 헌납(獻納) 여옥(汝玉) 오현주(吳鉉胄)이다. 공예(公藝) 오한원(吳翰源)의 형이다.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호익(張虎翼)의 딸이고, 부인은 풍양조씨(豊壤趙氏)로 조각(趙慤)의 딸이다. 1763년(영조 39)에 계미증광사마시(癸未增廣司馬試)에 생원 3등으로 합격하였고, 1766년(영조 42년) 병술정시문과(丙戌庭試文科)에 병과 9등으로 급제하였다. 1769년(영조 45)에 한림원설서(翰林院說書)의 벼슬에 제수되었다. 1789년(정조 13) 3월 20일에 홍문관(弘文館)의 후보자를 선발하는 도당록(都堂錄)에 권점(圈點) 6점을 받고 옥당(玉堂: 홍문관)이 되었으나 같은 해 4월, 교리(校理) 였던 그가 김이성(金履成)을 변호하는 상소를 올려 관적(館籍)에서 삭제되기도 했다. 1801년(순조 1)부터 여러번 사간원대사간(司諫院大司諫)에 임명되었고, 1805년(순조 5)에 정순대비(貞純大妃)의 승하를 알리는 사신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