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인엽(李寅燁)
  • 경주이씨(慶州李氏),  출생~사망 : 1656 ~ 1710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계장(季章). 호는 회와(晦窩). 좌의정 경억(慶億)의 아들이다. 1684년(숙종 10)에 사마시에 합격하고, 2년 뒤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일찍이, 1689년 숙종이 희빈장씨(禧嬪張氏) 소생을 원자로 정하는 사건을 계기로 서인이 정계에서 물러나게 되었는데, 숙종이 중전 민씨(閔氏)마저 폐하려 하자 전한림으로서 전판서 오두인(吳斗寅), 전참판 이세화(李世華), 전응교 박태보(朴泰輔) 등의 재야 서인인사들과 더불어 반대상소를 올리는 데 참여하였다. 그뒤 정계에 복귀하여 양역변통(良役變通)을 주관하였으며, 강화유수로서 치적을 남겨 사당이 세워졌다. 특히, 강화부 방비를 위한 진(鎭)의 설치에 관한 그의 견해는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아 후대까지 종종 인용되었는데, 정조 대에 이르러 실제 시행에 옮겨지기도 하였다. 벼슬이 행이조판서, 홍문관대제학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