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계우(季愚). 언적(彦迪)의 9세손이며, 첨지중추부사 정진(鼎搢)의 아들이다. 1819년(순조 19)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 대교, 봉교, 세자시강원설서, 사간원정언 등을 역임하고, 1826년 홍문록(弘文錄)에, 이듬해 도당록(都堂錄)에 올라 청요직이 보장되었다. 이후 10여년간 홍문관의 문한직에 종사한 뒤 양산군수로 나갔다. 1836년(헌종 2) 문과중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당상관에 오르고, 1840년 대사간이 되었다. 성품이 민첩, 강직하였고 검약, 검소한 생활로 시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