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김상휴(金相休)
  • 광주김씨(廣州金氏),  출생~사망 : ? ~ 1827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계용(季容). 호는 초천(蕉泉). 아버지는 무택(茂澤)이다. 1803년 증광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홍문록에 올랐다. 이듬해 홍문관교리로서 강화부안핵어사(江華府按○御史)로 나아가 강화부 중군 이만원(李○遠)의 불법을 다스렸다. 1805년 시독관으로 '강목'을 강독하면서 임금에게 선악을 밝게 할 것을 아뢰었다. 이듬해 수찬이 되었으며, 1807년 응교가 되었다. 이듬해 공충우도(公忠右道: 현재 충청도의 일부)의 암행어사가 되어 관할지역의 목사, 군수 등이 백성들을 제대로 다스리지 않는다는 장계(狀啓)를 임금에게 올렸다. 1810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으며, 그 공로로 1812년 가의대부(嘉義大夫)의 품계를 받았다. 1817년 강화부유수, 1819년 대사성을 거쳐 이조참판, 대사간이 되었으며, 1822년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1824년 형조판서, 좌부빈객, 의정부좌참찬 등을 거쳐, 이듬해 판의금부사, 1826년 예문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