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계심(季深). 통덕랑 경우(慶祐)의 아들이다. 1635년(인조 13)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4년 뒤에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곧 성균관학유에 임명되었고, 이어서 전적, 감찰, 공조좌랑 등을 차례로 역임하였다. 1647년 진해현감으로 외직으로 나가 혜정(惠政)을 베풀어 백성들의 추앙을 크게 받았고, 이어서 해주제독관을 거쳐 은계찰방(銀溪察訪)이 되었다. 이때 궁가(宮家)에서이 지역의 노비를 많이 점탈하였는데, 그가 조정에 보고하여 원소유주에게 돌려주게 하였다. 이로 인하여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많이 듣게 되었고, 진해현감 시절과 마찬가지로 송덕비가 세워졌다. 1660년(현종 1) 다시 전적을 거쳐, 예조좌랑에 승진하였으나 곧 옥구현감으로 다시 나갔다. 이때 전라도 지역에 크게 가뭄이 들었는데 그는 기민구제에 많은 노력을 하였지만 그 다음해에 관찰사의 뜻에 거슬려 파면되었다. 1666년 개성교수(開城敎授)로 재기용되었지만 곧 병으로 사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