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계빈(季賓). 한성 출생. 수견(壽堅)의 아들이다. 1722년(경종 2) 신경제(申慶濟) 등이 송시열(宋時烈)의 관작과 시호를 추삭(追削)하고 윤증(尹拯) 부자의 관작을 복귀하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자, 심정관은 동지들과 함께 극력 반대하였다. 이듬해 김범갑(金○甲) 등이 송시열을 도봉서원에서 출향(黜享)하려는 상소를 올리자 또 많은 선비를 이끌고 대궐에 부복, 상소하여 이를 물리쳤다. 1744년(영조 20) 사마시에 합격, 벼슬은 한성부서윤에 이르렀고, 86세 때 노인직으로 지중추부사가 되었다가 그해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