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경진(景眞). 호는 순암(順庵). 아버지는 온양군수(溫陽郡守) 이향정(二香亭) 이범중(李範中)이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문하에서 글을 배우면서 여러번 장려를 입었다. 1763년(영조 39) 계미증광사마시(癸未增廣司馬試)에 진사(進士) 3등으로 합격하여, 혜랑(惠郞) 등을 역임하고 담양부사(潭陽府使)에 이르렀다. 1792년(정조 16)에 정조(正祖)가 좌의정 채제공(蔡濟恭)과 소대(召對)를 할 때 이헌유를 언급하면서 '인상이 꽤 좋고 또 영민해 보였다'고 하였다. 같은 해에 영남 선비들이 만인소(萬人疏)를 올려 대의를 신원하고 밝히려 할 때 시종 소수(疏首)로서 논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