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경증(景曾). 호는 소석(小石). 풍은부원군(豊恩府院君) 만영(萬永)의 아들이며, 작은아버지인 영의정 인영(寅永)에게 입양되었다. 1844년(헌종 10) 황감제시(黃柑製試: 제주도의 진상품인 황감을 유생들에게 나누어주고 시험을 보인 제도)에 합격한 뒤, 이듬해 정시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였다. 그뒤 정언, 장령을 지내고, 1850년(철종 1) 이조참의에 올랐다. 이해 6월에 부호군을 거쳐 이듬해에는 개성부유수로 나갔다. 1855년 황해도관찰사를 역임하고, 이듬해 도총관, 형조판서, 대사헌을 거쳐 1857년 병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1857년 우참찬으로 순조비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죽자 빈전도감당상(殯殿都監堂上)을 겸직하던 중, 빈전도감에 화재가 일어나 선인문(宣仁門), 장청(將廳) 등 62칸을 태운 책임을 지고 파직되기도 하였다. 다음해 다시 우참찬에 복직되고, 병조판서를 두번째로 역임한 뒤 총융사를 겸하였다. 시호는 효헌(孝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