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송백옥(宋伯玉)
  • 여산송씨(礪山宋氏),  출생~사망 : 1837 ~ 1887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경원(景瑗). 증조부는 송익정(宋翼正), 조부는 송유재(宋儒載)이고, 부친은 송지규(宋持珪)이다. 외조부는 윤정식(尹鼎植)이다. 약관의 나이로 성균관에 유학(遊學)할 때 노유(老儒)들이 놀랄 정도로 시문에 뛰어났다. 그러나 과거에는 뜻이 없어 40이 넘을 때까지 성리학에만 몰두하였다. 후에 이름이 알려져 일찍이 경행으로 가현역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다가 철종의 왕비인 명순왕후(明純王后) 김씨의 국상 때 감조관이 되어 비로소 출사했다. 1882년(고종 19) 임오별시문과(壬午別試文科)에 병과(兵科) 5등으로 급제하여 홍문관시독관(弘文館侍讀官), 시강관(侍講官)으로 승진했고, 1884년 갑신정변 후에는 난역(亂逆)을 엄치하고 궁금(宮禁)을 엄히 하며 우수한 관리를 가릴 것 등 10조목을 상소하여 가납되었다. 그 후 응교(應敎), 집의(執義)에 제수되었다. 청나라 간섭에 의해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商事務衙門)이 설치되어 외교, 통상 관계를 맺게 되자 주사(主事)에 보임되었는데 병을 이유로 사퇴하였다.이 때 외세에 의해 국권이 날로 쇠약해짐을 보고 한탄하다가 1887년(고종 24) 10월 의관을 정제하고 사당에 참배한 뒤 강에 투신 자결했다. 저서로 '동문집성(東文集成)'이 있는데, 모두 36권 18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고려와 조선의 고문가들을 한 곳에 모아 그 특징을 드러내고 중국 글이 아닌 우리글의 우수성을 밝혀낸 책으로 고문 연구의 좋은 자료집으로 평가되고 있다.이 밖에 '고양군지보유(高陽郡誌補遺)'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