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이헌락(李憲洛)
  • 여주이씨(驪州李氏),  출생~사망 : 1718 ~ ?
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경순(景淳). 호는 약남(藥南). 아버지는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 이신중(李愼中)이고, 어머니는 경주최씨(慶州崔氏) 최덕기(崔德基)의 딸이다. 권희(權僖)의 문하에서 학문을 배웠다. 1744년(영조 20) 갑자식년사마시(甲子式年司馬試)에 생원 3등으로 합격하고, 1748년(영조 24) 학행으로 천거되어 강릉참봉(康陵參奉)에 제수되었다. 정조가 섭정할 때, 이조(吏曹)에 명하여 유명한 선비를 뽑아 계방(桂坊: 世子翊衛司)에 충원하도록 하자, 첫 번째로 선발되어 위수(衛率)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평양봉사(平壤奉事)를 거쳐 의금부도사(義禁府都事)와 사포서별제(司圃署別提)를 지냈다. 1766년(영조 42)에 하양현감(河陽縣監)을 지내고, 1776년(영조 52) 익위사익위(翊衛司翊衛)를 거쳐 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함창현감(咸昌縣監)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 벼슬을 버리고 약산(藥山) 남쪽에 서재를 짓고 천석(泉石)으로써 스스로 즐겼다. 문집으로 1850년에 후손 이경희(李景羲)가 편집, 간행 한 '약남집(藥南集)'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