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자는 건장(健章). 호는 월계당(月溪堂). 아버지는 송양전(宋養銓)이다. 집이 가난하여 나무를 채취하여 부모를 봉양하였고, 20세가 되어서야 비로소 대학(大學), 중용(中庸)을 읽고 학문에 대한 뜻들 두게 되고 맹자(孟子)를 일고 대의(大義)가 크게 열려 세간(世間)의 영욕(榮辱)을 버리고 오로지 학문에만 몰두한다. 금곡(錦谷) 송내희(宋來熙)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늙어서야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통정대부(通政大夫) 부호군오위장첨지중추부사(副護軍五衛將僉知中樞府事)에 임명되었다가, 같은 해인 1878년(고종 15) 3월 11일 사망하였다. 후에 아들 송명식(宋明植)이 귀해짐으로써 아경 겸 동지의금부사(亞卿兼同知義禁府事)에 추증되었다. 묘는 현재 대전시 동구 이사동(二沙洞)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