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일명 시경(始經). 자는 계상(季常). 호는 칠휴(七休). 아버지는 순장(順長)이다. 음보(蔭補)로 함흥판관이 되고, 1675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도당록(都堂錄), 홍문록(弘文錄)에 올랐다. 1678년 장령이 된 후 헌납을 거쳐, 1680년 집의가 되었으며, 그뒤 부수찬, 교리, 사간을 지낸 후 1682년 경상도관찰사, 1684년 승지를 거쳐 함경도관찰사가 되었으며, 이듬해 충청도관찰사가 되고, 이어서 1687년에는 강원도관찰사가 되어 관내의 궁장에 민폐가 큼을 들어 이를 폐지할 것을 상소하였다. 이듬해 대사간이 되었으며, 1689년 승지로 재직중 기사환국을 맞아 삭직되었다. 1694년 갑술환국으로 다시 복관되어 함경도관찰사가 되었다. 이듬해 다시 대사간이 되었고, 1696년에는 도승지가 된 뒤 지의금부사(知義禁府事), 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698년 한성부좌윤, 형조판서를 역임하고, 이어서 예조판서, 한성부판윤을 거쳐, 1708년 판돈령부사에 이르렀으며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 일찍이 병자호란 때 그의 아버지 순장이 김익겸(金益謙), 윤선거(尹宣擧)와 함께 죽기로 약속하였으나 윤선거는 이를 이행하지 않아 김익겸의 자손들은 윤선거의 아들인 증(拯)과 절교를 하였으나, 그는 오히려 증을 비호하였다. 시호는 정간(靖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