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공조판서 여임(汝任)의 손자로, 항령(杭令)의 아들이다. 열살 때부터 자제의 예도를 다하여 할아버지로부터 특히 사랑을 받았다. 병자호란 뒤 과거에 뜻을 버리고 재야에서 한가하게 지내며 세태를 초탈하려는 기상을 가지고 있었다. 조석윤(趙錫胤)이 이조판서로 있을 때 어떤 사람이 추천을 하자 세속에 더럽힐 수 없다는 이유로 벼슬을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늦게야 벼슬길에 나아가 사재감(司宰監)에 소속된 것을 필두로 여러 벼슬을 거쳐, 황간현감(黃澗縣監)에 이르렀다. 정사를 돌봄에 어질고 너그러우면서도 강직하고 과단성이 있어 백성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또한, 송준길(宋浚吉) 로부터도 민씨문중에서는 제일 훌륭하다는 평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