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거주지는 온양(溫陽). 자는 양여(養汝). 교관을 지낸 숙주(淑周)의 아들이며 관찰사를 지낸 만택(萬澤)의 손자이다. 세종 때의 명신 사성(思誠)의 후손이다. 1752년(영조 28)에는 사학유생(四學儒生)의 소두(疏頭)로서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을 문묘에 배향하자는 서문(書文)을 올렸다. 1773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고, 1784년(정조 8) 서형수(徐瀅修) 등과 함께 홍문록(弘文錄)에 뽑혔는데 이때 사간 이복휘(李福徽)의 제자라고 공격을 받았으나 우의정 김욱(金煜)의 비호로 무사하였다. 관직은 병조참의, 승지를 거쳐 강릉부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