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신억(申檍)
  • 평산신씨(平山申氏)
조선 후기의 문신. 1864년(고종 1) 좌의정 이유원(李裕元)이 조대비(趙大妃)에게 치적이 뛰어나 수령직을 맡을만한 인재 3인을 추천할 때 전문천군수 신억도 함께 추천되었다. 곧 공충도관찰사에 임명되어 청주 상당산성(上黨山城)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고, 부패한 향리의 숙정과 철저한 재결(災結) 조사를 통하여 선정을 하였다. 그해 교리 강장환(姜長煥)이 영동군수의 부정을 무고한 사건이 일어나 강장환은 유배되었으나, 신억은 외신(外臣)으로서 내신(內臣)의 처벌을 논하였다고 하여 견책당하였다. 뛰어난 치적으로 좌의정 김병학(金炳學)에 의하여 임기 이후에도 연임하였다. 그뒤 또 관아의 재정을 비축하고 군기를 보수한 공으로 가자(加資)되었다. 1866년 체임시 남연군(南延君) 묘의 제사를 주관하고 제문을 찬진(撰進)하라는 왕명을 받았다. 1873년 공조판서에 제수되었다. 시호는 효정(孝貞)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