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호는 삼편재(三便齋). 함안 출신. 아버지는 능절(能節)이며, 어머니는 현풍곽씨(玄風郭氏)로 중신(重新)의 딸이다. 유심춘(柳尋春)의 문인으로 어려서부터 재주가 있어 15∼16세에 사서오경을 통독하였다. 공부하는 사이에 고인들의 중요한 말을 모아 '경사요취 經史要聚'를 편저하여 학문의 지표를 삼았다. 1843년(헌종 9)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가 되었다. 뒤에 용양위부사과(龍○衛副司果)를 거쳐 성균관전적이 되고, 이듬해 사헌부지평에 임명되었다. 이현일(李玄逸)의 복직소를 올렸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고, 1852년(철종 3) 다시 이현일의 복직소를 올려 자기의 뜻을 관철시켰다. 1855년 통정(通政)의 계급에 승진하여 부호군이 되고, 이어 돈령부도정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다. 저서로는 '삼편재유집' 3권이 있다. 초명은 윤숙(潤塾), 자는 익성(翼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