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 어윤적(魚允迪)
  • 함종어씨(咸從魚氏),  출생~사망 : 1868 ~ 1935
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자는 치덕(穉德). 호는 혜재(惠齋). 참봉 창우(昌愚)의 아들이다. 일찍이 일본에 가서 게이오의숙(慶應義塾)에서 수학하고 귀국 후 탁지아문주사(度支衙門主事), 평식원총무과장(平式院總務課長)을 지냈으며, 보빙대사(報聘大使)의 수행원으로 일본에 다녀와서 훈5등욱일장(勳五等旭日章)을 받았다. 1904년 외부참서관(外部參書官)을 지내다가 총영사관이 되었으며 이듬해 훈5등팔괘장(勳五等八卦章)을 받았다. 1906년 용천감리에 임명되었으며, 이어 용천부윤(龍川府尹)이 되었다. 1907년 학부 편집국장이 된 뒤 국문연구소(國文硏究所)개설의 주동적 역할을 하여 국문의 통일에 노력하였다.이 연구소의 위원을 겸하였던 그는 훈민정음의 제자를 태극과 음양의 이치로 설명하려 하였고, 초성을 종성으로도 써야 한다는 주시경(周時經)의 주장과 의견을 같이하는 등 국문학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1908년 관립 한성사범학교(漢城師範學校)교장, 관립 한성고등여학교 교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1910년에는 훈4등팔괘장을 받았다. 국권강탈 이후에는 중추원부참의에 임명되어 조선사편찬위원,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강사 등을 지냈다. 일제의 이른바 문화정치 이후 조직된 많은 단체 중 대동사문회(大東斯文會)의 회장을 맡아 정만조(鄭萬朝) 등과 함께 활동하기도 하였다. 1927년에는 경기도참여관을 지냈다. 역사학에도 관심을 보여 역사관계 저술도 남겼다. 저서로는 '동사연표 東史年表', '조선승무유현연표 朝鮮陞○儒賢年表'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