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의 문신, 학자. 자는 자원(子元). 호는 한수재(寒秀齋). 아버지는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건이며, 어머니는 순흥안씨(順興安氏)로 동몽교관(童蒙敎官) 중겸(重謙)의 딸이다. 1777년(정조 1) 증광시(增廣試)에 병과로 급제, 가주서(假注書)가 되어 여러번 왕에게 불려가서 학문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는데 답변에 막힘이 없었다. 그뒤 태상시주부(太常寺主簿)를 거쳐 종부시(宗簿寺)로 옮겼다가 예조좌랑이 되었고, 1787년에는 '황극탕평책 皇極蕩平策'을 올려 나라 다스리는 도리를 건의하였다. 그뒤 경모궁령(景慕宮令), 사헌부지평과 장령, 사간원정언과 헌납을 거쳐 병조좌랑, 종부시정(宗簿寺正) 등을 역임한 뒤 양근군수(楊根郡守), 삭녕군수(朔寧郡守)를 지냈다. 지방의 수령이 되어서는 구폐를 일소하고 애민하는 정치를 펴서 백성의 칭송을 들었다. 1806년(순조 6) 병조참의에 올랐고, 예조참판에 추증되었다. 저서로 '한수재집'이 있다.